돈 가치가 떨어지면서 백만장자는 커녕 억만장자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 재산이 수십억원 또는 수백억원은 돼야 비로소 부자행세를 할 수 있다. 하루 100만원씩 써버린다고 해도 일년에 고작(?) 3억65백만원을 소비할 뿐 아닌가. 그런 탓에 평범한 사람들이 일평생 '겪게 되는' 숫자의 단위는 일 십 백 천 만 억 정도가 고작이다. 사실 천만원대 수표를 거래해 보지 못한 사람도 수두룩하다.
국내 경제통계에 억(億) 조(兆)에 이어 '경(京)'이 등장했다. 0이 16개나 붙는다. 지난해 국내 금융회사의 파생상품 규모가 처음으로 경 단위를 돌파했기 때문이다. 보통 매매에 따른 차액만 결제하기 때문에 이 금액이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보통 사람은 사상도 할 수 없는 큰 액수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뇌물 액수와 당초 4조원에서 최고 103조원으로 늘어난 수도 이전 비용처럼 이래저래 단위에 관한 불감증이 깊어지는 것이 아닌가 걱정도 된다.
숫자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조 경에 이어 해(垓,10의 20제곱) 자(24제곱) 양(양,28제곱) 구(32제곱) 간(36제곱) 정(40제곱) 재(44제곱) 극(48제곱)이 이어진다. 이후는 불문(佛門)의 세계다. 10의 52제곱인 항하사(恒河沙)는 갠지스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수량이라는 의미. 10의 56제곱은 아승기(阿僧기), 60제곱은 불가사의(不可思議)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의미이고, 그 억 배인 무량대수(無量大數)는 아미타불과 그 땅에 사는 백성들의 수명이 끝없음을 말한다.
이보다 더 큰 수는 '구골(GOOGOL)'이다. 미국의 수학자 에드워드 케스너가 전체 우주의 원자 수를 합산을 통해 추출해 낸 수치다. 1 다음에 0이 100개나 붙는다. 100년동안 우리나라에 내린 빗방울의 수도 구골보다는 적다고 한다. 케스너는 다시 1다음에 0이 10억의 제곱만큼 오는 '구골플렉스(GOOGOLPLEX)'를 고안해 냈다. 우주에 있는 별을 출발해 가장 먼 길로 지구에 오면서 0을 계속 쓴다 해도 다 쓰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상상이 가지 않는다.
-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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