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14일 목요일

병 속의 벼룩은 밖으로 못 나온다.

"짧은 병 속에 벼룩을 넣고 뚜껑을 닫아 놓으면 처음에는 벼룩이 뛰면서 뚜껑에 부딪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벼룩은 뚜껑 높이만큼만 뜁니다. 나중에는 뚜껑을 열어 놓아도 벼룩은 병을 뛰어넘지 못하게 되죠.”

이웅열(47) 코오롱그룹 회장이 말한 이른바 ‘벼룩론’이다. 벼룩은 처음에 한계에 저항하다가 이내 한계에 적응해 나중에는 스스로 한계를 설정해 자신을 가둔다. 우습게 보이지만 이회장은 이 얘기를 하면서 ‘기업 내 관료주의’를 거론했다.

“관료주의가 꼭 이렇습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관료주의에 불만을 표시하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관료주의에 물들기 때문이죠.”

이회장은 1996년 1월 40세 때 그룹의 총수가 됐다. 삼성·LG 같은 큰 그룹은 아니지만 코오롱은 한국 경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다. 54년 삼경화학으로 시작한 코오롱은 벌써 창업 50년을 바라보고 있다. 이회장보다 나이가 많다.
젊은 회장에게, 그것도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온 사람에게 50년 가까이 된 화섬기업은 고루하고 늙어 보였을 것이다. 층층시하의 관료주의는 그에게 코오롱 그룹의 가장 큰 문제로 보였을 것이다. 그가 벼룩론을 얘기하며 관료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회장은 지난 여름 6단계에 달했던 임원 직급을 사장·부사장·상무로 축소하고, 직원들의 직급도 4단계로 간략화했다. 스스로를 CEO라고 하기보다는 CVO(Chief Vision Officer)라고 부르는 것도 일종의 관행 파괴다.

단순히 일상적인 업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비전을 설계하겠다는 의지다. 캐주얼 복장을 즐기는 이회장이 지난 2000년 직원들의 복장자율화를 선언한 것도 관료주의를 깨기 위한 시도다. 그만큼 보수적이고 오래된 기업인 코오롱의 조직 내에 관료주의의 뿌리가 깊다는 얘기.

하지만 이회장은 관료주의 타파라는 혁신 외에도 미래에 대한 비전에 대해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과천 본사에서 팀장급 이상 임직원 3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특강의 제목도 ‘비전과 자신감’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됐다.
이회장은 강연에서 “자신감 있는 경영을 위해서는 고유의 리듬인 3박자를 경영에 접목할 필요가 있다”며 “▶해내겠다는 의지(will) ▶할 수 있다는 역량 확신(can) ▶성공 실현을 위한 전략(to do) 등이 기업 생존과 비전 실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며 ‘3박자 경영론’을 설파했다.

이회장은 이 중에서는 ‘해내겠다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IMF 위기 이후 지속된 구조조정을 통해 위축된 회사의 분위기를 감안한 발언이었다. 축소 지향으로 일관한 코오롱 그룹도 이제 3박자 경영론과 함께 다시 기지개를 펼 것으로 보인다.

이웅열 회장의 경영론

▶이노베이션론

=지금은 향상(improve)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혁신(innovation)이 필요한 때이다. 10%의 변화가 아닌 1백%의 변화, 즉 파격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골프경영론

=골프 실력은 경제학의 톱날 효과(ratchet effect)처럼 연습을 꾸준히 하면 어느 날 갑자기 실력이 늘어난다. 기업도 실력을 쌓으면 어느 날 갑자기 성과를 낼 수 있다.

▶혈액론

=인사도 기업도 모두 흐름이다. 당장 어렵다고 채용을 하지 않으면 피가 통하지 않아 썩게 마련이다. 흐름을 이어간다는 것 자체도 채용의 중요한 의미 중 하나다. 우수한 인재의 채용과 육성은 기업의 생명력이다.  

글 이석호 기자 (lukoo@joongang.co.kr)
출처 : 이코노미스트 710

댓글 없음:

댓글 쓰기